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만득이는 2005년 8월 20일 우리집에 왔다. 옆집에서 한 달 전에 낳은 애를 데려왔기 때문에 7월 20일을 생일로 챙기고 있다. 벌써 우리집에서 14해를 살았다.

작고 예쁜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은 귀여움을 데려오는 것 그 이상이다. 강아지들은 5살만 넘어도 작건 크건 어딘가 아픈 곳이 생긴다. 특히 순종 강아지는 무조건 생긴다. 순종이 가지고 있는 유전병이 있기 때문이다. 말티즈는 피부병과 관절염이 있고 노년이 되면 심장병이 오는 경우가 아주 많다. 불행하게도 우리 만득이는 이 모든 병을 다 앓고있다.

만득이를 처음 데려올때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엄마아빠도 강아지에 대해 잘 몰랐다. 이렇게 큰 슬픔과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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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는 무조건 교배를 시켜야하는 줄 알았다. 순종은 순종과 교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동네 “애견샵”에서 만득이 처럼 예쁜 말티즈를 골라 날을 받아 교배를 시켰다. 하지만 만득이의 첫 새끼는 죽어서 나왔다. 만득이는 한참을 인형을 물고 다녔다.

이후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다시는 교배를 시키지 않기로 했….지만 만득이는 자연교배 (우리 가족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옆집 바둑이와…!) 로 새끼를 세 마리를 낳았다. 그리고 중성화 수술을 했다. 중성화 수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지만 분명히 장점이 있다. 가장 큰 목적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발정기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각종 생식 관련 질환 발병률을 낮추기 위함이다. 중성화 반대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새끼 낳는 족족 사랑으로 키워주는 자연주의자도 있지만 개중에는 사람의 욕정과 연관지어 중성화 수술을 발정의 형벌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반려동물이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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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심장병 진단을 받은 것은 4년 전이다. 숨소리가 거칠어서 검진도 받을 겸 병원에 데려갔더니 심장비대증이 진행되고 있었다. 심장이 커지면서 폐를 압박해 숨 소리가 거칠어졌고, 기침도 하기 시작했다. 강심제를 처방받았는데 월 30만원의 약 값이 들었다. 이 작은 생명이 심장병에 걸려서 숨을 쌕쌕거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툭툭 떨어지곤했다. 그러나 참 어이없게도 슬픔을 극복해준건 시간이 아니라 다달이 지불해야는 약 값과 정기검진비였다. 가만히 슬프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심장약은 처음 복용한 순간부터 죽을때까지 먹어야한다. 만득이는 수술하기에는 시기도 나이도 적절하지가 않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평생 이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졌다. 돈 걱정을 하는 내가 인정머리없고 책임감 없는 사람 처럼 느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가서 초음파를 보고 약을 지어왔는데 월 몇 십만원씩 드는 이 돈이 계속 부담이 되었다. 사랑하니까 아깝지는 않은데 그래서 더 괴로웠다. (다행히 지금은 약 값이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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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기쁜 것 중 하나는 멍멍이 케어에 대한 비용 부담이 줄었다는 것이다. 병원비도 그렇고 간식도 더 좋은 것을 많이 사줄 수 있었다. 그런데 비용을 해결하고 나니 시간이 문제였다. 학생때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산책도 약 먹이는 것도 문제가 없었는데 직장인이 되고나니 하루 두 번 약 시간 맞추기가 정말 어려웠다. 엄마랑 3호랑 나랑 시간 조율을 해 저녁에 번갈아 당번을 정했지만 이 것도 쉽지는 않았다. 어쩌다 서로 깜빡해 저녁 약 시간을 놓치거나 약을 두 번 준 적도 있다. 정말 이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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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는 반려동물과 동반 출근이 가능하다. 식구가 많아서 만득이가 낮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아픈데 혼자 두기 싫어서 한동안 같이 출근했다. 만득이는 어렸을 때부터 헛짖음도 없고 얌전한 편이라 동료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없이 한동안 사무실의 마스코트 역할을 했다. 약 시간을 잘 지키면 크게 나쁜 곳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출근하면 켁켁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병원에 들렀다. 복용량을 조절할 때가 온거라고 했다. 강심제 복용량을 늘리면 신장에 무리가 올 수 있다며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하는 약이 추가가 되었다. 하루에 한 두장이면 충분했던 배변 패드를 하루에 열 번도 넘게 갈아줘야 했다. 출근할 때 애기 엄마들 기저귀 가방처럼 열 몇 장의 패드와 약, 밥, 간식을 챙겨 출근했다. 어떤 날은 약 시간도 맞췄고 쉬도 잘했고 밥도 잘 먹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계속 기침을 했다. 얘 왜 이러냐며, 이러다 죽는거 아니냐며 생각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사람들도 거슬리니까 한 마디씩 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아침에 만득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데려오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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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도중 깨금발을 들며 뒷다리를 번갈아 들어올리는 모습이 잦아졌다. 뒷다리 슬개골 탈구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말티즈, 푸들, 포메라니안 같이 작고 다리가 약한 강아지들은 연령에 관계없이 슬개골 탈구가 찾아올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발견하면 수술을 할 수 있지만 10살이 넘어 마취조차 어려운 나이라 수술이 불가능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온 집안에 카페트를 깔았는데 낯설었는지 카페트 사이로만 걸어다녔다. 얇은걸로 재질을 바꾸니 오줌을 쌌다. 빨아놓으면 또 쌌다. 엄마와 나는 서로 빨래를 미루고 싸우기도 했다. 신경질이 나서 “야! 너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은거야!” 소리쳤다가 “미안해…” 하고 안아주고 또 화내고 반복이었다. 관절을 지키려는 가족들과 몰라주는 만득이. 발바닥에 바세린을 바르면 덜 미끄러진다기에 발랐는데 보란듯이 전부 핥아먹었다. 조인트맥스, 코세퀸 등을 구해 먹였다. 코세퀸을 잘 먹어서 아직도 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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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귀엽고 발랄하기만 한 시기는 몇 년 되지 않는다. 해가 갈 수록 신경쓰고 챙겨주어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 아마 득이는 계속 아플 것이고 또 다른 아픈 곳이 생길 수도 있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다. 덜 아프게 도와주고 아파도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것이 나의 몫이다.

남매여행 3탄. 다낭 마지막편

마지막 조식을 먹으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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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 차려져있던 아침상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아침식사가 야외에 차려져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빵을 집어 토스터 앞으로 갔다. 사실 전날부터 토스터가 좀 부실해 보였는데 하필 내가 빵 하나 구우려던 찰나에 고장이났다. 빵을 고정시키는 레버가 고장이 났는지 빵이 내려는 가는데 고정이 안되었다. 직원을 불러 고장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몇 번 눌러보고 고장의 원인을 파악하더니, 자기가 손으로 레버를 누르고 내 빵을 데우고 있을테니 나보고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빵 좀 데워먹자고 직원에게 토스터 손잡이를 계속 누르고 있게 하는게 너무 미안해서 됐다고 하니 직원은 막 손짓으로 나보고 가라고하고 그러다 서로 웃음이 터졌다. 나는 고맙다고 부탁한다며 달걀과 과일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직원이 내가 돌아온 것을 보고 손을 뗐고 빵이 올라왔다. 그런데 빵이 덜 구워졌다. ㅋㅋㅋㅋ. 나보고 한 바퀴 또 돌고오래. ㅋㅋㅋㅋ. 웃으면서 쌀국수 한 그릇을 더 가지고 왔는데 젠장 빵이 새카매졌다. 약간 탄 것 같지 않냐고 물으니 웃으며 엄지척을 하는데 이거 뭐 상황이 따질수도 없고 다시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 알아서 먹을게…

식사를 마치고 바로 체크아웃을 했다. 비행기 시간까지 몇 시간 여유가 있지만 미리 호이안을 벗어나 다낭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려고 일찍 나왔다. 저렴한 가격에 마구마구 퍼먹었던 미니바, 수영하다 목말라서 로마황제처럼 물 위에서 받아먹은 커피, 조석으로 시켜먹은 룸서비스를 정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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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다리를 건너봄

택시를 불러 타고 전날 못간 콩카페에 가기로했다. 아, 그러보고니 신기한건 첫 날 공항에서 탔던 택시를 빼고 택시가 전부 웨건 스타일이었다. 베트남 전역이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다낭 쪽은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가? 궁금하다.

택시에 내리니 콩카페 앞에서 길 건너주는 공안 경찰이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 문을 열어주고 짐을 내려주고 안전하게(?) 무단횡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도시가 전체 관광객을 위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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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카페라떼, 카페 쓰어다, 코코넛 커피

콩카페는 이른 시간에도 한국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1층은 물론 2층도 만석이었다. 마침 우리가 자리를 두리번 거릴 때 일어나는 팀이 있어 그 곳에 겨우 앉았다. 특이한건 이 카페는 1층에서 캐리어를 맡아준다. 공항에서 오며가며 들리는 사람이 많아서 생긴 서비스인듯. 손님들이 짐을 들고 오르락 내리락 하고 돌아다니면 길막도 하게되고 직원들 서빙에도 방해되니 아예 1층에 짐 놓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한것 같다.

2호는 코코넛 커피, 3호는 연유가 들어간 카페 쓰어다, 나는 카페라떼 아이스를 시켰다. 베트남 커피는 원두에 헤이즐넛같은 독특한 끝맛이 있어서 라떼 맛이 독특하다. 단 음료를 좋아하지 않아서 한입씩 맛만 살짝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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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카페 2층에서 바라보는 창밖

한국인들 사이의 콩카페 인기 비결은 네이버 블로그가 아닐까한다. 다들 가장 많이 참고하는 레퍼런스가 네이버 블로그다 보니 블로그에 나온 가게를 보고 가서 블로그에 쓰고 또 누군가 그것을 보게되는 구조다. 콩카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강이 보이는 거대한 창가에 앉아 달달한 카페 쓰어다 한 잔 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좋은 카페다. 공항과도 가까우니 비행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면 귀국 전에 들리기에 적격이다. 그러나 모두들 이런 생각을 하고 오는 바람에 한국행 비행시간 근처는 물론이고 다낭과 호이안 일대를 오며가며 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직원들이 주문도 한국어로 받을 지경이니 이국적인 티타임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다낭 여행을 한다면 콩카페를 가지 말라고 할 순 없지만, 바로 한 블록 근처만 해도 한갓진 로컬 카페가 정말 많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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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카페에 걸려져 있던 커다란 사진

웬만한 가게들이 전부 카드결제가 가능했는데, 콩카페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 베트남돈이 남지 않아서 그냥 손해 볼 생각하고 달러를 내밀었는데 여기서 뜻밖의 은혜로운 환전을 하게된다. 직원이 자기 휴대폰으로 환율을 검색해보더니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는 정도로 계산해 베트남돈으로 거슬러 주었다. 만세! 택시비가 생겼다! 남은돈 다 털어 택시비 내고 팁도 과하게 드리고 베트남동을 소진했다.

다낭 공항은 지어진지 얼마 안되었다고 해서 조금 기대를 했는데 역시 열악했다. 점심 메뉴 선택권이 너무나 좁아서 슬펐다. 딘타이펑 vs 버거킹 중에서 버거킹을 선택했다. 공항 아니랄까봐 여기는 베트남 물가 아니고 인터내셔널 물가. 비행기가 조금 연착되는 바람에 시간이 더 생겼는데 할게 없어서 책 읽다가 낮잠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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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바닥이 베트남 땅과 멀어진다.
이제 끝났다. 안녕! 베트남!

에필로그.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제부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제부는 2호가 없는동안 2호가 너무 보고싶었다며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며칠만에 얼굴에 윤기가 흐를 정도로 빵빵해져 돌아온 우리와 대조되는 제부의 얼굴… 심을 바꿔끼우고 한동안 쳐다보지 않은 앱들을 열어보니 휴가 동안 쌓인 메일과 내일 스케쥴 알림들이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강력하게 일깨워 주었다. 그래,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 따흐흑…


알아두면 쓸데있는 베트남 여행 팁.

#1 베트남동(VND)

집 근처에서 바로 한화 <-> 베트남동 환전은 하기가 쉽지 않다. 한화 <-> 달러 환전을 해서 베트남 현지에서 환전을 해도 된다. 공항이나 시내 환전소를 이용하면된다. 관광지 환전소는 자체 수수료를 세게 붙인다. 베트남동은 한화의 약 20배로 계산하면 편하다. 택시비가 20만동이 나왔다면, 한화로 약 만원. 0을 하나 떼고 둘로 나누면 계산이 빠르다.

#2 숙소

물가가 저렴한만큼 숙박비도 저렴하다. 우리는 숙소를 고르기 가장 까다로운 혼성 3인 조합이다. 홍콩에서는 저렴한 숙소를 1+2호, 3호로 나눠서 방을 2개를 썼고 마카오에서는 비싼방에 간이침대를 하나 추가해 사용해봤는데 둘 다 나름 장단점이 있었다. 저렴한 곳에 방을 두개를 잡으면 아무래도 여자/남자 방을 따로쓰는거라 환복, 화장실 이용 등이 덜 불편하고, 좋은 호텔은 좋은 호텔이라서 좋다(?).

호이안에서는 1박 $300 밑으로도 좋은 리조트를 엄청엄청 많이 찾을 수 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고민이었다. 우리는 이 가격에 무려 2층 독채 풀빌라를 예약했는데, 1층은 3호가 쓰고 2층은 1+2호 둘이서 사용했다. 엄청 팬시하고 고급스러운 호텔은 아니지만 없는 살림 한 푼 두 푼 모아 온 우리 셋에게는 궁전같은 곳이었다. 빌라 안에 작은 프라이빗 풀이있고, 하루 한 번 하우스키퍼와 함께 수영장 청소하는 분이 와서 메인풀 처럼 청소를 해 준다. 바다를 바라보는 널따란 메인 풀도 두 개(하나는 어린이 전용)나 있는 커다란 리조트였다. 파도가 거세 무서워서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프라이빗 비치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 뿐만 아니라 다낭과 호이안 대부분의 호텔과 리조트가 프라이빗 비치를 보유하고 있다.

숙소를 고르는 나만의 팁은 아고다와 같은 숙박앱에서 원하는 옵션을 필터에 걸어놓고 후보를 추린뒤, 리뷰를 검색해보며 지워나가는 것이다. 이번 베트남 여행의 경우 “조식”, “수영장”, “무료취소” 옵션을 걸어놓고 찾았다. 무료취소 옵션 매우 중요하다. 보통 무료취소가 가능한 기간까지 두 개 혹은 세 개의 호텔을 예약해놓고 (그 호텔 스케쥴 관리에 무리가 없을만큼 미리) 하나를 남겨놓고 취소한다. 이번에도 좋아보이는 숙소 서너개를 잡아놓고 장단점을 비교해가며 정했다.

#3 날씨

아큐웨더에 들어가면 전세계 날씨를 앞으로 3개월까지 미리 알 수 있다. 비교적 정확한 편이라 애용한다. 처음 접속하면 화씨(F)로 나오는데 우측 상단에서 섭씨(C)로 변경하면 된다. 여행이 가까워 지면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인스타그램에 그 도시를 검색하고 상위에 뜨는 최근 게시물을 확인하는 것. 지금 실시간으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을 볼 수 있으니 가장 좋다. 베트남의 경우 아침에 덥고 점심에 덥고 저녁에 더운 계절이라 상관없었는데, 일교차가 큰 지역을 여행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4 스케쥴

구글이나 네이버에 지역이름을 검색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한국어로도 검색해보고 영어로도 검색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동물원, 식물원, 수족관을 좋아하기 때문에 꼭 한 번씩 같이 검색해보는데 아쉽게도 다낭에는 없었다. 식당은 네이버 블로그에 많이 의존한다. 나는 가리는 음식도 많고 향이 강한 음식을 잘 못먹는 편이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 한국 식당 한 두 곳 정도는 꼭 찾아본다. 미국에서 옐프에 올라온 nice, good, world best restaurant 보고 들어간 곳들이 끔찍했던 기억이 한 두번이 아님… 또 하나 괜찮은 방법을 하나 공유하자면, 브런치에 검색해보는 것이다. 네이버만큼 글이 많지는 않지만 영양가 있는 글의 수로만 비교해본다면 못지 않다. 여행가는 지역으로만 검색해봐도 정성스러운 글들이 아름다운 제목을 달고 나온다. 마치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알록달록한 옷들이 가득 들어있는 서랍장을 연듯한 기분이다. 브런치에도 광고가 있지만 작가를 가려받는 플랫폼 특성상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최근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예쁘고 분위기있는 카페를 찾고싶어 찾아봤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가고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딜가야할지 고민이 될 정도.

#5 필수

1.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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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가 꼭 필요한 이유 두 가지는 오프라인 기능과 장소 저장 기능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미리 다운받아놓으면, 며칠간 사용할 수 있다. 어딜 가던 로밍을 하거나 유심을 구입하기 때문에 필요없을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의외로 통화권 이탈 지역이 많아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장소 저장 기능은 여행 전 미리 가고싶은 곳들을 별표나 하트 표시로 저장해 놓을 수 있는 기능이다. 다이어리에 지도를 그려 표시하곤 했는데, 아무리 잘 그려도 현재 내 위치까지 알려주는 구글 지도가 있으니 너무 좋다.

2. 트라비포켓

쓰다보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이 또 여행의 매력…은 아니고 지출처를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 메모앱에 적곤했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칼더치를 하기 때문에 기록은 필수. 홍콩에서는 메모앱에 대신 결제해준 금액이나 나눠내야하는 부분을 일일이 기록했는데, 우연히 트라비포켓이라는 앱을 알게되어 소개한다. 금액정산 뿐만 아니라 여행 전반의 기록을 남길 수 있어서 언제 뭘 했는지 나중에 참고하기에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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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화폐 단위를 설정할 수 있다. 우리는 더치해야하니까 원화로!

처음 실행하면 왼쪽처럼 여행 지역과 날짜, 사용금액이 뜬다. 오키나와는 아직 계획을 안세워서 0원으로 뜨지만 예산을 입력하면 그 금액이 나타난다. 옆에 날짜별 사용내역처럼 그 때 그 때 기록해두면 시간순서까지 정리할 수 있다. 사진도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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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3) 에서 나온 3호 부상으로 인한 거금 지출도 기록해두었다. 그 날 소울키친 가기전에 갔던 카페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안나서 답답했는데 캡쳐하려고 트라비포켓 열었다가 찾았다.

이 정도 기능은 무료로도 사용 가능하지만 이 앱 개발자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표시와 더 많은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다음 여행부터는 PRO 버전을 사용해보기로 한다.

3. 카메라 위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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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할수록 사진 찍은 지역이 세분화되어 나타난다

아이폰의 경우 카메라의 위치 기능을 활성화하고 사진을 찍으면 나중에 지도위에 사진을 표시해준다. 아마 안드로이드에도 있을 것이다. 블로그 작성할때, 나중에 추억을 되짚어보고 싶을때 아주 유용하다.

#6 필수품

1. 마스크 
오토바이 매연이 정말 심각하다. 보니까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은 무조건 마스크 쓰고있음. 의외로 베트남 갈때 마스크 챙겨가라는 말을 별로 안하는데 공기가 나빠서 정말 필수다. 도심은 물론 바닷가도 예외가 아님.

2. 물티슈
덥고 습하고 공기가 나쁘기 때문에 손이 금방 끈적끈적해진다. 그리고 포슈아같이 작은 식당에서는 물수건을 안준다. 어떤 레스토랑은 물수건을 요청했더니 추가 요금을 받는다고 하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물티슈를 꺼내 사용했다.

3. 미니선풍기
없으면 사야한다. 무조건 있어야한다.

4. 모기 쫓는 약
동남아지역 여행가면 꼭 사서 뿌려야한다길래 공항에서 구입했다. 그 특유의 인공향이 조금 괴로웠는데 모기 물려서 혹시 모를 병에 노출될까봐 열심히 뿌렸다.

이상한 정상 가족

TV를 보다보면, “내 딸은 저런놈에게 시집 안 보내” 라 말하는 아버지를 종종 볼 수 있다. 딸이 좀 더 멋지고, 조금 더 괜찮은 사람과 결혼하길 바라는 아버지들의 비장한 염원. 아마 딸 가진 아버지라면 미래 사위는 어때야 한다는 조건이 최소 열 가지 정도는 될것이다. 흔한 레파토리는 아니지만, 미혼인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 서둘러 애 아버지를 찾아 결혼시키려는 아버지 또한 종종 볼 수 있다. 이 아버지의 경우도 아마 나름의 미래 사위 조건 리스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이 결혼 전에 임신해버리면 그 리스트는 소용없다. 일단 결혼이 중요하다.

‘결혼’으로 이루어진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 가족’의 모습이다. 하나라도 없거나, 더해진다면 바로 ‘이상’해진다. 위의 이야기처럼 결혼하지 않은 딸이 임신을 하는 경우도 그렇다. 부모는 정상 가족의 일탈자인 딸을 어서 정상 가족 안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결혼을 서두른다. 우리 딸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면 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둔 미래 사위 자격 리스트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정상 가족.

<이상한 정상가족>은 ‘정상 가족’ 주위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모습들을 말해주는 책이다. 한 장 한 장이 외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가득차있다. 어디가 병들었다고 말하기 힘들정도로 곳곳이 다치고 멍든 가족주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누구나, 이 책 어딘가에 교집합이 있다

아동 학대에 찬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체벌의 경우 의견이 분분하다. “적절한 체벌은 필요하다” 라는 모호하지만 확고한 신념부터, “엉덩이는 괜찮다” 라던지 “전용 회초리가 있으면 괜찮다” 등 꽤나 구체적인 체벌 방안까지 갖춘 의견들이 나온다. 각자 학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만한 체벌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아이를 때리는 행위를 훈육이라 혹은 사랑이라 부른다.

책에서는 세계 최초로 체벌 금지법이 정해진 스웨덴에서의 일화를 소개한다.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스웨덴에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기 1년전인 1987년, 독일 도서협회가 주는 평화상을 타면서 ‘폭력에 반대합니다 Never Violence’ 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 아이들이 직접 회초리를 가져오게 하고 몇 대 맞을지도 결정하라고 함으로써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와 같은 경고와 함께 스스로 반성할 기회도 갖도록 한다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이 소년은 회초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한참 만에 울면서 돌아와 작은 돌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이상한 정상가족> 중에서

체벌을 하는 어른은 아이가 견딜 수 있을만한 육체적 고통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학습하길 바란다. 하지만 당사자인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위 일화의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내보낸 이유를 “나를 아프게할 물건을 찾아오게 하기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체벌은 어른들의 생각만큼 훈육의 효과가 있지 않다.

이 책의 첫 장 <‘내 것인 너’를 위한 친밀한 폭력, 체벌>을 열었을 때, 나는 자연스레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을 정도로 맞으며 자랐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가 맞을 짓을 했어” 또는 “그 땐 다 그렇게 맞으며 자랐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체벌도 용인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다는것에 놀랐다. 세상에 맞을 짓이 어디있고 맞아도 되는 때가 어디있나.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가여웠다.

이 책의 저자인 김희경 작가는 세이브더칠드런, 인권정책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면서 겪은 안타까운 사건들을 소개한다. 너무 많은 위험에 당연하게 노출되어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언론에 노출되는 자극적이면서도 무감각한 보도로 인해 아동 학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좁아져있다. 아이를 죽을때까지 때리는 것 만이 학대가 아니다. 학대는 계모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학대는 정상 가족 밖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아이로서 사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권의식을 마비된 채 내버려두고 있고 외면하고있다. 이 책은 그 것을 깨운다. 체벌로 시작해서 과보호와 방임까지 이 모든 것이 학대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다소 건조한 단어 뒤에 어린이 살해가 숨겨져 있음을, “친권”이라는 따뜻한 단어 뒤에 자식을 부모의 소유로 보는 합의가 있다고 알려준다.

미혼모는 있지만 미혼부는 없다

임신은 혼자 할 수 없다. 굳이 설명하기도 귀찮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정의의 심판은 이 사실을 잘 모르는듯 하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임신을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 와도 낳아야한다. 아이를 낳았는데 키울 수 없는 상황이 와도 키워야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벌의 대상은 여성뿐이다.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낙태죄”가 그러하고, 아기를 낳아 유기하는 엄마는 처벌하지만 아빠는 알바아닌 “영아유기죄”가 또한 그러하다. 아이는 남녀가 함께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데, 왜 여성에게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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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해외 입양 아동의 40% 를 담당하는 ‘고아수출국’ 이다

낳기 전엔 소중한 생명이라며 인공임신중절을 죄로 규정하는 이 사회는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미혼모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사회적으로는 물론 법적으로도 차별받는다. 이쯤되면 ‘정상 가족’ 안에서만 허락된 출산을 감히 어긴 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든다. 임신했다고 학교에 못 나오게 하는 선생님, 낙태나 입양을 강요하는 엄마,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일단 결혼 시키려는 아빠가 우리 주변의 어른들의 모습이다. 김희경 작가가 주목한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 하나가 바로 혼외출산이다. 미혼모는 부도덕하다는 편견이 미혼모를 평범한 엄마로 자립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미혼모라는 표현도 이상하다. 결혼을 했던 이혼을 했던 미혼이건 비혼이건 엄마는 엄마인데.

이 책의 후반부는 국가가 ‘정상 가족’에 대한 이미지를 주입시키며 자행해온 일들과 그 부작용이 낳은 정상인듯 정상아닌 정상같은 가족의 모습에 대해 보여준다. 시대별로 입맛따라 달라지는 핵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의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뻔뻔한 정책들이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의 경쟁구도를 만들어왔다. 값싼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던 국가는 핵가족을 찬양하며 농촌 자녀의 도시 이주를 장려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유인을 외쳤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전되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자 노인 부양의 필요성을 자식들에게 떠넘겼다. 부모고 뭐고 농촌 탈출해서 서울로 와서 일하라더니 갑자기 아들 딸들에게 전통적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지우면서 국가는 아무런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았다.  살인적인 도심의 집값과 오르지 않는 임금 속에서 N포 세대 자녀의 생계까지 책임져야하는 세대에게 이제는 부모 봉양의 의무가 더해졌다. 전통적 가족의 해체를 부르짖을땐 언제고 이제와서 이게 원래 우리의 전통이라며 부모까지 책임지라니. 부모를 실버타운이나 요양센터에 보내면 그 비용을 자식이 모두 부담함에도 불구하고 고려장 취급하는 경우 또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또한 감히 전통 규범을 벗어난 벌과 같은 비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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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족의 이탈자들 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도 잔뜩 병들어있다. 우리 아빠 또한 70-80년대에 여자 형제들의 희생으로 공부했다. 결혼 후 누이들과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을 엄마에게 나눠주었다. 이 비극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다.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는 공부해야하는 오빠 뒷바라지를 했고 결혼해서는 남편과 자식과 시부모 뒷바라지를 했다. 아빠의 부채청산에 감정노동까지 해왔다. 엄마도 아빠도 본인들의 인생 없이 이 가족 단위 경쟁체제에서 희생하며 살았다. 이 희생적인 모습이 너무나 흔해 모두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채 지내왔다. 책을 덮으니 병을 당장 고치기는 어려워도 어디가 아픈지는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우리 아프다고. 이제 치료하자고.

 

덧1. 이 글을 쓰는 도중 김희경 작가가 문체부 차관보에 임명되었다.
덧2. 이 글을 쓰는 도중 e-Book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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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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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 기업의 디자이너.
책보고 드라마보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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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여행 3탄. 다낭(4)

우리는 호이안에서만 3일을 머물렀고, 4일째 되는 날 드디어 다낭 시내에 가기로했다.

오전에 약 20km 정도 떨어진 바나힐이라는 곳을 관광한 뒤 다낭 시내로 가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내가 검색해본 바로는 바나힐 가는 방법은 택시가 유일했는데, 방법이 조금 독특하다. 거의 대부분의 후기가 택시를 불러서 타고, 택시 기사와 시간을 정한 뒤 그 택시를 그대로 타고 나오라고 알려주었다. 그 주변 관광지는 바나힐 한 군데라 택시를 다시 잡지 못할 경우가 있어서 그런듯했다. 우리도 아침을 먹고 나와서 프론트에 부탁해 택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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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해서 숙소에서 미리 적어왔는데 아주 유용했다

택시 기사님은 영어를 전혀 못했다. 종이에 그림과 지명을 표시해서 우리 도착하면 11시 될 것 같은데, 3시에 데리러 올 수 있는지 열심히 손짓을 동원했다. 기사님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바나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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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황량한 들판부터 제법 번화한 거리, 독특한 모양의 사당 등 다양한 모습을 지나쳤다. 엄청 넓은 주차장이 나왔고, 바나힐 입구가 보였다. 기사님에게 손가락 세개를 펴 보였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했는데, 미터기에 찍힌 50여만동 (한화 약 2-3만원) 을 내밀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아니, 왜? 안 받겠다는 소리는 아닐거고. 이따가 달라는 뜻인가? 왜? 우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어찌알고? 만약 이 기사님을 다시 못만나면 이 기사님도 억울하고 우리는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느낄것이다. 기사님은 마치 이 돈을 받으면 우리가 돌아가는 택시를 다른 차를 잡을까봐 그러는지 끝까지 한사코 거절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뢰표시로 서로 사진을 찍어 이따 여기서 만나자며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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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힐의 입장료는 한화 약 3만원이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얘기를 들어 오전부터 움직인 덕분에 우리는 긴 대기 시간 없이 바로 표를 끊고, 케이블카를 타러 올라갈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몇 번, 계단 몇 번을 올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했다.

바나힐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프랑스인들의 피서시설이었다. 다낭의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한 프랑스 귀족들이 바나산 꼭대기에 리조트를 지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케이블카가 없었으므로 식민지민들이 가마에 프랑스 귀족들을 태워 오르락 내리락 했다고. 바나힐은 와인셀러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 프랑스 귀족들이 산 꼭대기에서 한 잔 하기 위해 지었던 것이다. 그 당시 이 지역의 식민지민은 와인이 담긴 지게를 지고 이 산을 걸어 올라갔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어서 더이상 아무도 고생스레 올라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곳은 이제 더이상 정복자 프랑스 위락의 상징도 아니다. 하지만 케이블카 아래 구불구불 굽은 길을 보며 걸어올라갔을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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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스릴있는 놀이기구도 곧잘 타고 별로 겁이없었는데 어쩐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무서운 것들이 많아진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고 생각보다 더더 높이 올라가는 것 같아서 손에 자꾸 땀이났다. 아직 어려서(?) 겁이 없는 3호는 누나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드디어 내리는가 싶더니 갈아타래. 젠장. 온 만큼 또 갔다. 하얀 안개가 짙어졌다가 흐려졌다가 했는데 알고보니 구름이었다. 구름이 케이블카를 훅 덮더니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구름 위 테마파크, 바나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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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베트남에서 유럽으로 순간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산 아래와는 정말 공기마저 달랐다. 에어컨이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주변은 온통 유럽풍이었다.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서 먼저 좀 둘러보기로 했다. 유럽 어느 골목에 온 것 처럼 이국적인 식당들과 교회가 있었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목조로 된 아시아 스타일 건물이 보여 그 쪽으로 올라갔다. 건물이 가까워 올수록 향 냄새가 진동했다. 작은 석불이 하나 있었고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레일바이크, 미니 자이로드롭 등의 어트랙션은 그새 줄이 길어져 구경만했다. 테마파크 실내에 거울방 미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우습게 보고 들어갔다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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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인줄 알았는데 생명체였다. 박쥐인지 나방인지 가까이 확인할 용기는 없었음.

부페를 가려고 했는데 런치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끝났다고 해서 다른 곳을 찾아보았다. 광장쪽에 야외 식당이 있었는데, 입구쪽에서 받은 무료 맥주 쿠폰도 한 잔씩 사용할 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디서 주문하는지 사람들은 다 소세지나 스테이크 같은 것을 한 접시씩 앞에 두고있었다. 여기서도 직원들은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겨우겨우 물어물어 계산하는 곳을 찾았다. 원하는 메뉴를 얘기하면 즉석에서 구워주는데, 맛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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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때 환전한 베트남 달러가 다 떨어져 미화로 계산을 했는데 자체수수료를 붙여 계산하시는 바람에 아주 비싼 식사를 하게되었다. 광장에 백인 악사들의 퍼레이드, 댄스 공연, 미니 서커스가 연달아 펼쳐졌다. 술도 한 잔 마셨겠다 뜻밖에 흥이 너무 올라서 어깨를 들썩이며 구경했고 그런거 극혐하는 2호가 경멸의 눈빛을 잠시 보냈으나 개의치 않았다. 서커스용 키다리 신발(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빈곤한 어휘력에 한숨)을 신은 사람이 내 모자를 뺏어가서 자기 머리 위에 얹었다. 나는 모자를 받으려고 안쓰럽게 팔을 내밀었지만 모자는 내가 안 보는 사이 3호에게 전달되어 있었다. 허무하게 농락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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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걷다보니 공원이 있었다. 엄청 큰 규모의 불상, 돌조각, 플라워가든, 미로가든이 있었다. 하나씩 구경을 하다가 미로가든에 들어갔는데, 한 사람 겨우 통과할 좁은 미로였다. 이런거 길 잘 찾는 3호가 먼저, 2호가 그 뒤, 내가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미로를 따라 동영상 촬영을 하려고 동생들 뒤에서 “얘들아” 하고 불렀는데 오른쪽 길로 사라진 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미로 안에는 패닉을 조성하려는 듯 스피커의 한계치를 초과한 잡음이 들릴정도의 큰 볼륨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고 내 목소리는 동생들에게 닿지 않았다. 설상가상 미로 안은 시그널이 약해 메신저도 쓸 수 없었다. 나는 혼자 길을 찾아야했다. 미로를 빠져나갈 땐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서 일단 오른쪽으로 계속 갔다. 웬 돌 테이블이 나왔고 거기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또 돌 테이블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보니 돌 테이블이 두 개 였다. 나는 같은 곳에 갇힌줄 알고 계속해서 반대로 돌고 돌았다. 또 돌 테이블. 또 돌 테이블. 미약하게 전화신호가 잡혔다. 신경질이 팍 나서 전화가 터지자 마자 전화받는 2호에게 소리를 질렀다. 늬들끼리 나갔냐며… 2호는 나와보니 없는걸 어쩌란 말이냐며 같이 화를 냈다. 아니 나를 데리고(?) 갔어야지 젠장… 3호는 나를 찾으러 다시 미로에 진입했고 나는 어찌어찌 탈출했다. 이윽고 3호도 나왔다. 하아…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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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도 있고 교회도 있고 동물 조각도 있고…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하행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데, 3시가 임박해왔다. 알고보니 상행은 길이 두개고 하행은 하나인데 우리가 올때 탔던 것은 상행 편도로만 운행하는 케이블카였다. 그걸 모르고 우리 올라올때 탔던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하행을 열심히 찾았으나 나올리 없고 직원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어찌어찌 10여분을 다시 걸어올라가 하행편을 찾아 탔는데 시간은 이미 3시를 넘겼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빗발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택시기사가 걱정됐다. 어쩐지 하행이 상행보다 느린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행은 상행보다 크기가 작았는데도 다른 팀과 합석(?)을 시켰다. 우리 앞에는 아들 둘과 함께 탄 부부가 있었다. 애기들은 우리 얼굴을 신기한듯 쳐다보고 속닥거렸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못알아듣고 그들 역시 우리 말을 못알아듣는듯 했다. 3호랑 나는 서로 “누나가 웃기게 생겨서 그래.”, “니가 뚱뚱해서 신기한가보다” 하며 수군거렸다.

내려오니 3시 30분 가량 되어있었다. 아저씨 연락처라도 알면 미터기라도 켜라고 할텐데 이건 뭐 연락할 방법도 없고 사실 방법이 있어도 말이 안통하긴 하는데… 아무튼 마음은 조급하고 시간은 흐르고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출구로 나오니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우산을 들고 서있었다. 우리처럼 데려왔던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들도 있고, 빈차로 들어와 손님을 태워가려는 기사들도 있었다. 우리 기사님(?)을 찾을때까지 호객을 하는 기사를 세 네명 정도 만났다. 꼭 왕복택시를 예약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아무튼 우리 내린쪽 주차장을 가다가 우산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기사님을 만났다. 너무 미안해서 헐레벌떨 뛰어갔다. 미터기는 우리가 내렸을때 그대로에서 멈춰있었다. 우리 내려주고 손님을 새로 태우긴 했는지, 식사는 했는지 별게 다 걱정이 되었다. 다음 행선지는 다낭 시내였다. 진정한 한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방문해야하는 한강 앞 콩카페를 목적지로 바나힐을 벗어났다. 가는 도중 다행히 비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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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차선이고 뭐고 없음. 내가 가는 길이 길임.

가면서 돈을 세어보니 수중에 60여만동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초과하는 부분은 달러로 지불하면 되니 큰 걱정없이 시내에 도착했다. 미터기에 찍힌대로 택시비를 내려고 베트남돈과 함께 미화를 내밀었다. 우리를 기다려준 팁과 수수료를 포함해 넉넉하게 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글쎄 이 양반이 달러를 더 달라는게 아닌가. 아까의 연민은 바로 식어버리고 환율 계산기를 보여줬더니 고개를 휙 돌려서 응수도 안해준다. 젠장… 아저씨… 뭐 여기서 돈 몇푼으로 실랑이 할 생각도 없고 어차피 팁을 넉넉히 주려고 했으니 그냥 달라는대로 주고 내렸다. 그랬더니 다시 호이안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언제냐며 기다리겠다고 한다. ㅋㅋ 안타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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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용다리

다낭은 호이안과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도로는 비교적 잘 포장되어있고, 현대적인 건물들과 글로벌 브랜드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호이안에서 차와 오토바이로 북적이는 도로를 복잡하다고 느꼈는데 다낭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콩카페 앞에는 2개 차선 정도의 작은 길이 하나 있는데, 횡단보도와 신호등 대신에 무단횡단을 도와주는 공안경찰이 있다.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길을 건너려고 하니 거대한 양산을 들고와 친절하게 햇빛을 막아주며 길을 함께 건너주었다. 심지어 우리와 함께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짐까지 들어주었다. 뜻밖의 친절에 팁을 줘야하나 싶었는데 바로 다시 건너갔다.

 

 

콩카페는 앉을 자리도 없이 북적였다. 다낭에서만큼은 에어컨을 기대했지만 에어컨도 없었다. 사실 콩카페보다는 수비니어 카페가 더 가보고싶기도 했고, 어차피 자리도 없어서 수비니어 카페에 가기로 했다. 구글맵을 보니 약 600m 떨어져있었다. 어제 1km 도 걸었는데 이 정도 쯤이야. 하루쯤 오래 걷는 것은 여행의 특별한 기억을 남긴다.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간판들 사이를 지나는 경험은 정말 묘하다. 수비니어 카페는 드디어. 드디어. 에어컨이 있었다. 미약한 바람이었지만 그 곳에 얼굴을 대고 열을 식혔다. 서울에서 건조하면 피부가 어쩌구 필터에 먼지가 어쩌구 하면서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때에도 마스크팩을 붙이는 사람이 여기서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에어컨에 얼굴을 갖다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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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994.JPG 수비니어 카페 방명록에 붙여놓고 옴

수비니어 카페는 말 그대로 다낭 굿즈를 판매하는 기념품 카페다. 실내 인테리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모던한 느낌이었다. 의외로 살 것은 별로 없었다. 남은 현금을 지출처를 정해 나누고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얘들아. 우리 스테이크를 먹자. 워낙 육식 문화가 없는 탓에 고기가 조금 그립더라. 만장일치(라고 해봤자 셋)로 스테이크 하우스를 가기로 했고, 그 전에 롯데마트(그 롯데마트 맞음)를 들러 기념품을 사러갔다. 물가가 싸니까 뭐 한도끝도 없이 담아도 무리가 없는 느낌이다. G7 커피, 코코넛 커피, 말린 망고, 스리라차 소스, 인스턴트 쌀국수 등 유명한 기념품들을 하나 가득 샀다. 3호는 여자친구를 위한 망고를 엄청나게 샀다. 나는 특별히 챙겨줄 사람은 없고 회사 사람들이랑 나눠먹을 G7 한 봉지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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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는 나오자마자 먹어서 사진이 없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탓에 너무나 지쳐있었고 스테이크와 새우를 거의 마시듯 해치웠다. 국내 방송에 한 번 나왔던 집이라 역시 한국사람이 많았다. 밥을 먹고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 기사들이 잡는다. 택시 가격을 잘 흥정하라는 블로그들에서 본 여러 후기들과는 달리 미터기 정찰제가 잘 되어있어 흥정할 필요가 한번도 없었다. 우리는 제일 처음 만난 기사님의 차를 탔다. 참, 다낭과 호이안의 택시 기본요금이 다르다. 다낭이 조금 더 싸다. 기사님은 친절했고 영어를 잘했다. 우리보고 어디서 왔냐며, 오늘 어땠냐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가는 길에 2호에게 “아까 한강 용다리 봤어?” 라고 말을 걸었는데, 기사님이 룸미러로 내 눈을 쳐다보며 “한강?! 한강?! 한강 고?!!!!” 해서 “노노노논ㄴㄴ노 호이안 고”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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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이른 체크아웃을 위해 자기 전 미리 짐 정리를 했다.

낮에 볕이 좋았는지 2층에 널어놓은 수영복들이 바짝바짝 말라있었다. 늘어놓은 화장품과 악세사리를 도로 담으며 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롯데마트에서 장 봐온 것을 나누고, 여기저기 뒤섞여있던 각자의 짐을 나눴다. 남매여행 2탄때는 1-2-3호가 모두 같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필요없었던 과정이다. 홍학이 바람 빼는 것이 또한 큰 일거리였다. 노는 것은 정말 잠시였는데 바람 넣고 빼는게 한참이다. 짐을 다 챙겨놓고 마트에서 사온 맥주와 과자를 꺼내 조촐하게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잠시도 그냥 흘려보낸 시간 없이 알차게 놀았는데도 시간이 훅훅 지나가 버렸다.

남매여행 3탄. 다낭(3)

밖에서 먹는 이른 아침식사가 어느새 익숙해졌다.

나름 입맛에 맞게 맛있게 먹는 방법도 개발했다. 달걀을 요리해 달라고 하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데, 스크램블, 프라이는 물론 야채를 조금 넣어 덴버 스타일 오믈렛도 가능하다. 그냥 먹고 빵 위에 얹어먹고 감자를 올려먹고 등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먹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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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 풀에 꽉 차는 홍학이

홍학이를 드디어 채웠다. 프라이빗 풀 위에 얹으니 가득 찼다. 홍학이를 데리고 메인 풀로 갔다. 풀에서 우리 옆 빌라의 호주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할머니 여동생, 할머니 딸이랑 왔다고. 베트남에 무려 한 달 정도 휴가를 왔다고한다. 세상 부러워라… 언젠가 나도 엄마와 이모와 2호와 따뜻한 나라로 한 달의 휴가를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어린시절로 돌아가 수영을 하고 놀았던 것처럼, 엄마와 이모는 조개 껍질 줍고 미역따던 완도의 소녀들이 되어 놀았으면 한다. 우리 엄마 머리카락이 저 할머니만큼 하얗게 새어도, 몇 시간이고 수영할 수 있을만큼 건강했으면 좋겠다.

홍학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할머니에게 “할모니 이거 태워줄까?” 했더니 칼거절.

넓지도 좁지도 않은 풀 위에 부유물 처럼 그냥 누워 떠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야자수 이파리가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3호가 나를 공격하기 전까지는 아주 괜찮은 휴식이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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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칠때까지 놀다 방으로 들어와 룸서비스로 햄버거를 시켰다. 먹고 바로 누웠다. 잠깐 누워서 핸드폰 하다보니 한 시간이 지나있다. 안방비치 Anbang Beach 가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걸어가보기로 했다.

3.

호이안은 정말 시골이다. 다낭은 모르겠지만 호이안은 정말 정말 시골이다. 안방비치까지 걸어가는 길에 닭을 몇 마리나 봤는지 모른다. 살아있는 닭을 본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 신기했다.

다낭의 기후에 비해(?) 사람들은 노출이 적은 의상을 입고다닌다. 상해의 아저씨들이 상의를 탈의하고 다니는 것을 생각해보면 여기 사람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다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데도 다들 긴 소매에 가까운 옷을 입고있다. 다낭, 호이안에서는 아오자이 차림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오자이를 볼 때마다 참 불편한 옷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상의는 팔뚝과 가슴 라인이 다 드러날 정도로 타이트하게 붙는데다가 겨드랑이 밑으로는 시원하게 벌어져 옆구리가 다 드러난다. 옷이 앞뒤로 갈라져있으니 바지가 밑위가 높다. 역시 긴 바지다. 평년 30도를 웃도는 나라의 복장 치고는 너무 더운 옷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상대적으로 시원한 복장의 나를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이곳에선 보기 드문 체격인 3호가 있어서 그런지 대놓고 하지는 못했지만 한참 지나간뒤에 휘파람을 분다거나, 오토바이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여기에서 입으려고 산 연두색 슬리브리스가 더운 바람과 함께 그 시선들 사이에서 팔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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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 물론 해산물

걸으며 고급 호텔, 리조트와 또 새로운 호텔로 보이는 공사현장 몇개를 지나쳤다. 5성급 호텔들 사이 한 사람 누우면 꽉 찰듯한 집에 서너명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모습과 그 집에서 나온 개, 닭들을 보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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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나 발에서 피나.”

아까 수영장에서 너무 신나게 논 나머지 3호 발가락 살갗이 조금 까졌다. 바보가 숙소에서 말했으면 진작 밴드라도 붙이고 나오는건데 괜찮겠지 하며 그냥 나왔다고 한다. 누나들의 모진 쿠사리를 들으며 3호는 발을 절뚝거렸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맨발에 샌달을 신은데다가 길이 정돈된 길이 아니라서 모래가 많아 그냥 걷기엔 힘들어 보였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약국이 없었다. 마사지샵, 미용실, 식당만 계속 나올 뿐. 그러다가 수퍼처럼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할머니만 둘 뿐이라 약간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어로 밴드 Band-aid 있냐고 물었는데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 듯 했다. 내가 손짓 발짓을 동원하고 피 흘리는 3호의 발을 가리키며 band? bandage? 하고 물으니 기다리라는 듯한 제스쳐를 보인다. 할머니는 2층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곧 10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 한 명이 나와 웃으며 물었다.

“May I help you?”

새까맣고 빛나는 눈동자와 똑부러지는 목소리가 기억난다. 그 아이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는 아이 둘셋이 따라나와 뒤에서 수군수군 꺄르르 거렸다. 수퍼에서 밴드를 파냐고 물어보니 손짓을 하며 저쪽 어딘가에 약국이 있다고한다. 이야기를 듣고 구글맵을 펼쳐보았는데 약국표시도 번지수도 없어 자칫 길을 잃을 것 같았다. 걸어갈 수 있는거리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길래 혹시 안내를 해 줄 수 있냐 물었다. 그랬더니 우리보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기가 다녀오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모르는 아이에게 심부름 시킨 모양새가 된 것 같아 아니다, 같이 가자고 했더니 어느새 폴짝 뛰어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미처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아이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아니 그런데 자전거 안장에 글쎄 아빠다리를 하고 앉더라. 오. 전기 자전거였다…! 아이는 그렇게 전기 자전거 위에 도인처럼 앉아서 윙 소리를 내며 약국을 향해갔다. 연쇄적으로 일어난 낯선 풍경에 우리 셋다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순식간에 옆 골목으로 사라진 아이는 작은 밴드 한 통을 들고왔다. 500원 남짓했던 밴드 가격에 몇 천원 더해 내밀었다. 아이는 처음엔 손사래를 쳤지만 곧 흐뭇한 얼굴로 돈을 쥐고 땡큐를 연발했다. 우리도 고마워. 아니, 우리가 고맙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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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닷가가 보였다. 5일 일정중 유일하게 흐린날이었다. 흐려도 덥긴했음. 마치 우리나라 시장의 먹자골목같은 길이 펼쳐졌다. 바닷가 쪽으로 더 내려갔다. 발이 푹푹 빠지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걷다보니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와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미리 다녀온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좋은 조망을 가진 카페 한 곳이 나왔다. 바로 찾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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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2층 구조로 되어있는 그 카페는 간단한 식사와 함께 커피, 음료, 술도 함께 판매했다. 2층에 올라가니 안방비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맨살에 습기를 잔뜩먹은 쿠션이 닿아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바닷바람도 어쩐지 텁텁했지만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괜찮았다. 각자 하고싶은 것을 하며 여유롭게 두어시간을 보내기로했다. 여기저기 사진도 찍고 셀카도 찍었다. 수영하는 사람, 패러세일링을 하는 사람, 모래사장에 누운 사람을 배경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바로 비우고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아이패드를 열어 전자책 하나를 골랐다. 재미없는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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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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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가 출발 전부터 가고싶어했던 소울키친에 가기로했다. 사실 나는 이때부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숙소로 돌아가 잠이나 자고싶었다. 밥먹는 동안 내내 힘든 티를 내서 2호에게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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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돌아다니던 고양이

소울키친은 온통 한국인 뿐이었다. 메뉴도 한국어 표기가 되어있고 직원들도 한국어가 가능했다. 간판을 한국어로 바꿔달고 태극기를 꽂아놔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늦은 저녁때라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는 이미 차있었고 우리는 안쪽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해가 뚝 떨어지고 나니 바닷가 자리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바닷가쪽으로는 불빛이 전혀 없었다. 하필 흐린날이라 선셋도 탁하고 그마저도 잠시였다. 할로겐 불빛으로 채워진 가게 안을 보다가 바닷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갑자기 시력을 잃은듯한 어둠뿐이었다. 소울키친을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지만 만약 재방문한다면 해가지기 전에 오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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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맥주 타이거, 사이공, 사이공 드래프트를 한 잔씩 시키고 모닝글로리, 볶음 쌀국수, 감자튀김과 소세지를 주문했다. 모닝글로리는 묘하게 한국음식 같았다. 미역줄기 볶음같은 느낌…? 볶음 쌀국수는 탱탱한 해물들이 넉넉하게 들어있었고 감튀는 감튀맛이었음. 어느 식당에 가던 2인분을 박살을 냈으면 냈지 내 앞에 식사는 잘 안남기는데 더위 때문에 입맛이 없어 몇 젓가락 맛보고 말았다. 미니 선풍기가 없었으면 아마 열이 올라 기절했을것이다. 2호와 3호가 내 눈치를 보는지 식사를 황급히 마친것 같아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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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잡기는 쉬웠다. 호이안은 걸어다니다보면 언제든지 뒤에서 자기차를 타라며 빵빵거린다. 안방비치까지 걸어오면서도 열 몇대의 택시가 뒤따라오며 경적을 울려댔다. 바로 택시 한 대를 잡아 숙소로 돌아왔다. 다낭과 호이안은 택시 기본요금이 다르다. 호이안 택시가 좀 더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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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무서움.

남매여행 3탄. 다낭(2)

눈을 뜨니 6시였다. 한국에서보다 2시간 가량 일찍 눈이 떠졌다.

 

 

1.

눈 뜨자마자 풀에 들어갔다.

8월의 다낭은 언제 어디서 물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수영을 하고 싶어서 숙소를 프라이빗 풀이 있는 작은 독채빌라로 골랐다. 2m 도 안되는 풀에서 수경을 쓰고 신나게 놀았다. 20여년전 캐리비안베이에서 물장구 치던 모습으로 돌아가 애처럼 놀았다. 지금은 위로 옆으로 많이 커진 다 큰 어른들이지만 노는 모습은 그때와 다름없다. 뒤에서 머리를 누르고, 수경의 숨구멍을 막고, 수영하다 걸리적 거리면 서로 발로 밀며 놀았다. 한두시간 바짝 물놀이하고 샤워하고 나와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우리는 아침 메뉴 고르는 수고 하나를 덜기위해 5일 내내 조식을 먹기로했다. 엄청 고급스럽고 맛있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훌륭한 아침이었다. 매일매일 따뜻한 쌀국수와 함께 간단한 뷔페가 준비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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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가 있다.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우유를 시도하는 것은 꽤 큰 결심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우유 한 팩 마시고싶어 마트에 들렀는데 200ml 내외의 작은 크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전부 천조국 스케일이었다. 포기는 못하고 ‘그래 어차피 열흘 넘게 있으니까 큰거 사서 두고 두고 마시자’ 하고 샀던 거대한 우유는 비릿한 맛이 났다. 참고 마셔보려고 했지만 결국 마시지 못하고 다 버렸다. 이후 나는 저비용고효율에 입맛이 길들여졌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나라 우유는 대부분 고온살균 우유다. 130℃ 에서 2초간 살균하는 방법으로 유산균, 단백질 손실이 크지만 유통기간이 길고 제조비용이 적게 든다. 내가 깔끔하고 고소하다고 느끼는 맛은 고온 단백질 변형에서 온 것이었다. 다른 나라 우유들은 저온살균이 일반적이다. 조식 뷔페에 있는 우유를 본 찰나에 이 생각이났다. 냉장고 밖에 나와있는 것으로 보아 멸균우유일것 같기도 하다. 일단 도전해본다.

맛없다. 젠장….
뭔 우유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차갑지도 않고 살짝 눅눅한 느낌에 마시기 힘들었다.
씨리얼까지 통째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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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은 쌀국수도 잘먹고 양식도 잘먹었다. 막 제대한 막내는 미슐랭 레스토랑 온 것처럼 먹었다. 밥먹고 조금 걸으니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가 보인다. 엄마한테 영상통화를 걸어 바다를 보여줬다. 엄마도 참 오고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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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조트에서 호이안 올드타운(올드시티)까지 무료로 라이드를 해준다고 해서 시간을 정해 올드타운으로 갔다. 전날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던 호이안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차선과 신호는 어둠에 가려져 있던것이 아니라 정말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냥 내가 가는 방향이 내 차선이고 경적을 울리면 그게 시그널이다. 미니 밴 같은 것을 타고 갔는데, 이 차에도 내비게이션은 없었고 기사님은 벨트를 메지 않았다. 10분가량 달려 올드타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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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에서 달러로만 환전을 해왔다. 여행 전 검색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베트남돈으로 환전을 하는것보다 달러로 환전을 하고 현지에서 환전을 하는 것을 추천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가게에서 달러 결제가 가능하고, 혹시 베트남돈이 남으면 한국에서 정말 쓸모가 없기 때문에 조금씩 환전을 하고 모자라면 카드를 쓰기로했다. 시내 환전소를 찾아 들어가 200불을 건넸다. 환율을 검색해보니 약 455만동 정도였다. 베트남돈은 단위가 커서 처음에 조금 헷갈리는데, 1원에 약 20동이라 뒤에 0을 하나 떼고 2로 나누면 얼추 한화와 맞다. 그런데 이 환전소에서는 400만동 정도밖에 주지 않았다. 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왜 400만동 밖에 안주냐고 물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기 계산기를 내민다. 400 얼마가 찍혀있다. 수수료로 2-3만원 정도를 내야하는 셈이다. 아니지. 한국에서 달러 환전 수수료도 냈으니 더 내는거다. 그런데 나는 베트남어를 못하고 그 사람은 영어를 못(안)하니 별 수 있나. 순순히 돈을 받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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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의 마지막 해가 기승을 부렸다. 해가 미친듯이 내리쬐어 얼굴이 따가울정도였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은 바로 미니 선풍기다. 오래 걷지 못하고 카페를 찾아 아무데나 들어갔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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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찬 공기를 기대했지만 비극적이게도 이 곳은 에어컨이 없었다. 우리가 앉으니 선풍기를 앞에 가져다주었다. 일단 선풍기가 어디야.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호이안 올드타운은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함부로 개조를 할 수가 없고 화장실 위치를 바꾸려고해도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고한다. 근데 그래도 에어컨은 달아도 되는거 아닌가?… 하아… 음료를 하나씩 시키니 재밌게도 차가운 물수건을 주었다. 고깃집에 앉은 아저씨처럼 물수건을 펴서 얼굴과 목주변을 닦았다. 나는 아이스 카페라떼를, 2호는 과일쥬스를, 3호는 코코넛 커피를 마셨다. 3호는 커피 한 잔을 1초만에 털어 넣고 한 잔을 더 시켰다.

뭔가 끔찍한 철푸덕 소리가 났다. 2호의 뒤로 천장에서 쥐가 한 마리 떨어졌다. 우리를 비롯한 주변의 관광객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동안 직원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어… 그래 너희… 쥐를 봤구나… 하하’ 이런 표정. 우리도 놀라긴 했으나 하하… 베트남… 하며 웃어 넘겼다. 한 김 더위를 식히니 올드타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 새파란 하늘이 가득 보였다. 거리에는 원색의 장식이 달린 건물들과 자주색 꽃이 만개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악세사리 가게도 구경하고 옷 가게도 보며 천천히 걸었다. 사당 祠堂 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문 앞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티켓, 티켓” 한다. 그런데 둘러봐도 티켓 파는 곳이 없다. 티켓을 어디서 사야하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돈을 보여주니 손 사래를 치며 티켓을 사오라는 듯이 내보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티켓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근처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손짓을 해주기는 하는데 그 방향을 따라가면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일단 매표소는 잠시 포기하고 근처에 포슈아라는 (한국인들에게만) 유명한 식당이 있어 찾아갔다. 가는 길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개똥을 봤다. 개… 맞겠지…?

 

 

바깥에 한 테이블이 비어있어 앉았다. 실내에 에어컨이 없어 안이나 밖이나 덥긴 매한가지다. 사진으로 된 메뉴판을 보고 쌀국수로 추정되는 Pho Bo 하나, 탕수육 같이 생긴 Hoanh Thanh (Fried Wonton) 하나, 자루소바같이 생긴 Bun Cha 하나를 시켰다. 쌀국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맛에 뭔가 조금 더 깊은 감칠맛이 났다. 프라이드 완탕이라 그래서 탕수육이나 만두같은 맛을 상상했던 호이안 탄은 소가 아주 적게 들어있는 납작만두를 바싹 튀긴 음식이었다. 케찹같은 칠리 소스가 발라져있었다. 분짜는 불맛이 나는 돼지갈비와 함께 먹는 쌀국수인데, 자루소바처럼 진한 국물에 면을 찍어먹었다. 전체적으로 양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이 모든것이 1만원이 안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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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힘을내어 매표소를 찾았다. 매표소를 찾아가는 동안 귀걸이도 사고 호이안 건물 모형이 담긴 스노우볼도 사고 티켓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사당도 찾아 구경했으나 끝끝내 매표소를 보지 못했다. 햇빛이 선글라스를 뚫고 눈을 후비는 느낌이 들었다. 땀도 나고 무엇보다 얼굴이 따가웠다. 그 때, 낯설고 이국적인 이 마을에서 아주 익숙한 간판을 보았다. 배스킨라빈스. 홀린듯 배스킨라빈스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과 반미를 주문했다. 아무 물웅덩이 비슷한것이라도 보인다면 뛰어들고 싶을만큼 덥고 힘들었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올드시티는 해지면 다시 오기로 했다.

 

 

 

 

4.

 

리조트의 밴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나도 차가 안왔다. 그냥 택시를 탈까 싶었다. 전화가 안되니 리조트에 전화를 걸어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도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누가 영어로 나에게 길을 물었다. 백인 부부였다. 올드타운 어떻게 가야하냐며. “어… 여기가 올드타운인데. 구글 지도 있죠? 폰 줘봐요.” 하고 물었더니 휴대폰이 없대. 충격받아서 왜 휴대폰도 없이 여행하냐고 물으니 그냥 휴대폰 없이 여행하고 싶었다고한다. 아마 나 사는 날에는 그런 여행은 없을거야 싶다가도 휴대폰이 없으면 서로의 얼굴을 더 자주 볼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내 폰으로 구글맵을 켜서 몇 군데 길을 알려주고 비록 나는 사지 못했지만 티켓을 꼭 구매하라는 팁도 알려줬다. 두세시간 전엔 나도 이 곳에 처음 도착한 이방인이었는데 한 바퀴 돌고와서 내가 다녀온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 때 마침 리조트의 차가 도착했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풀에 들어갔다. 2호가 신혼여행때 산 거대한 홍학 튜브의 바람을 채워 놀고싶었지만 홍학이는 우리에게 쉽사리 부피를 허락하지 않았다. 바람을 절반정도 채우다가 그냥 지쳐서 튜브 없이 놀았다. 프라이빗 비치를 향해있는 메인 풀에서 해가 넘어갈때까지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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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의 등을 타고 신난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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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숨구멍을 막는 몹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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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만원 정도의 룸 서비스

 

저녁에 다시 호이안에 나가려고 했으나 체력을 다 써버려서 그냥 룸서비스 이빠이 시켜서 먹고 마시다 취해 잠들었다. 천장에는 또 도마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