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zy Rich Asians

먼저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전형적인 한국 막장 드라마라기에, 만두 싸대기나 얼굴에 마라탕 뿌리기 정도를 기대했지만 그냥 평범한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또 흥미로운 것은 왓챠 한줄평에 <블랙팬서>와 연관지어 평을 한 의견이 많았다. 백인 주류 무대에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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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레이첼 (왼쪽) 남친놈 닉 (오른쪽)

모든 문제의 원흉은 사실 닉이다. 가족이 부자인 것은 그래 숨길 수 있어도 ‘나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널 존나 견제할거야’ 라는 말을 왜 안해줬는지. 집에 인사시키러 가면서 애인에게 가족에 대한 완전 최소한의 정보도 안 주고 헬게이트로 밀어넣은 남친놈!

 

 

언어로 설명되는 캐릭터

“너 미국식 액센트를 쓰는구나.” 남자주인공 엄마가 영국 귀족 액센트를 쓰며 아들에게 하던 말이다. 고급 영어를 써야지 이놈이 미국물을 다 먹고 왔네… 이런 느낌이었다. 또 남주인공의 사촌 아스트리드는 초등학생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프랑스어로 동화를 읽어준다. 소위 말하는 ‘선진 문물’ 유럽에 대한 동경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영화의 시작도 중뽕 가득한 문구와 함께, 영국의 근사한 호텔에서 인종차별하는 백인 직원들에게 ‘돈’으로 한 방 먹이는 걸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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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봉투같은 옷 입고가지 말라며 영 가족이 어떤 부자인지 설명해주는 펙 린

미국에서 나고 자란 레이첼은 당연히 영어가 모국어고 엄마의 언어인 중국어도 조금은 할 줄 알지만 잘 못한다. 중국계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배울 필요도 그다지 못 느꼈을 거고,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레이첼의 가정 형편상 특별히 여유도 없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에 반해 닉은 가족의 언어인 중국어는 물론이고 가족들이 광둥어도 쓰기에 광둥어도 하고, 싱가폴에서 자랐으니 영어는 물론 다른 언어도 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로 습득을 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언어에 노출되면서 자라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닉 너는 토익 학원 안가봤겠지… (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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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신 다음 날 만날 것 같은 펙 린 아빠

“나이스 투 미트 유.” 레이첼의 NYU 친구 펙 린의 아빠가 레이첼을 보고 한 말이다. 사실 레이첼 아빠는 아시안 액센트가 없지만 레이첼에게 장난치려고 일부러 어색한 발음을 했다. 레이첼 아빠는 미국식 영어를 쓴다. 같은 싱가폴에 사는 중국인들이지만 영의 가족과 린의 가족의 영어가 다르다. 소위 말해 ‘원래 부자’인 영의 가족은 ‘원래 부자 나라’였던 영국 학교를 나오고, 당연히 ‘원래 영어’인 영국식 영어를 쓰고, 미국식 영어를 우습게 여긴다. 영의 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중에 부자가 된’ 린의 가족은 ‘나중에 부자가 된 나라’인 미국에서 공부했고, ‘미국식 영어’를 쓴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 를 봐야하는가

여자들끼리 모여서 명품!! 쇼핑!!! 스파!!! 꺄아아아!!! 하고, 여주인공은 그런 사람들을 보고 “디자이너 가방을 들고다니는 멍청한 애들” 이라 흉을보고, 남주인공은 그런 말을 하는 여주에게 반해 “너는,,, 계념녀,,, 다른 애들과 달러,,,” 라고한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생각나는 이런 장면들은 20년 전에는 재밌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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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역을 맡은 지미 양 (왼쪽)

가장 짜증나는 새끼 아니 캐릭터는 닉 영의 친구 버나드였다. 버나드는 HBO <실리콘 밸리>에서 진 양으로 등장하는 지미 양이 맡았다. 버나드를 보며 묘한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버나드는 남의 총각 파티때 불꽃놀이 대포를 쏘다가 옆에 있던 비키니 입은 여자를 날려버리고, 역시 남의 결혼 파티에서 아기를 만들자며 여배우랑 옷 벗고 뛰어다닌다. 익숙하면서도 신물나는 이 개차반 캐릭터를 보며 처음에는 ‘아 언제까지 이런 놈들을 영화에서 봐야하는 걸까’ 싶었다. 버나드 주변의 여자 캐릭터들은 그냥 버나드의 개차반 캐릭터를 설명하기위한 쭉쭉빵빵 트로피1, 2, 3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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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 <실리콘밸리> 진 양

그러다가 <실리콘 밸리>의 진 양이 떠올랐다. 진 양은 문법이 맞지 않는 아시안 액센트를 쓰는 성격 나쁜 중국인 개발자다. 나중엔 남의 회사 아이디어를 훔쳐 중국에서 카피 서비스를 만들어서 판다. 아시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란 스테레오타입은 다 때려박은 그런 캐릭터다. 그래서 같은 얼굴을 한 배우가 ‘돈 많은 개차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보니, 비록 그게 구리고 드러운 캐릭터라 할지라도, 아시안 배우의 배역이 넓어진 것에 진일보를 느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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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신데렐라를 떠올리게 하는 드레스

 

그러면 비록 신데렐라 스토리라도 올 아시안 캐스팅이라면 의미가 있는걸까? 하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 소비방식에 얘기하고 싶다. 지금은 서양동화를 동양버전으로 들려줄 때가 아니라, 잠자는 공주에게 허락없이 키스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줄 때 아닌가.

 

 

덧. 유일한 ‘게이’로 등장하는 닉의 사촌 올리버 또한 ‘게이 스테레오 타입’의 결정체다. 물론 게이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야기 내내 등장하는 단 한명의 게이를 표현할 땐 신중해야 한다.

덧2. “아시안은 부모의 힘으로 크레이지는 내 손으로 이뤘으니 이제 주님이 리치만 이뤄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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