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은자다카, 마블영웅 트찰라

최빈국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르지 않는 비브라늄을 가진 초강대국 와칸다.

 

청바지를 입고 양을 치는 소년, 짐캐리 같은 수트를 입고 입술에 거대한 장식을 끼운 원로, 맨발에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고 홀로그램으로 연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블 스튜디오가 상상하는 ‘발전한 아프리카’의 모습은 딱 거기까지. 아프리카에도 백화점 있고 아이폰 쓴다고 하면 놀라는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나지 않았나? 미국 사람들만 아이폰 쓰는줄 알어.

라이온킹과 많이 닮았다.

 

그만큼 너무나 예상 가능한 아프리카의 모습이라 아쉬웠다. 심바를 위협하는 존재가 스카가 아닌 스카의 아들이라는 것이 조금 다른 점이다.

와칸다의 왕 트차카와 그 아들 트찰라 –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정글의 왕 무파사와 동생 스카 – <라이온킹>
라이온킹과 또 다른 점이 있다.

 

스카는 왕이 되어서는 안되는 캐릭터였지만 은자다카는 왕이 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캐릭터라는 것.

 

슬럼가의 왕 에릭 킬몽거

드레드하고 청자켓 입고 박물관에 나타난 에릭 킬몽거. 박물관 경비들을 살해하고 유리를 부수고 유물을 훔쳐간다. 죄 없는 경비들의 죽음과 도난당한 박물관의 슬픔과 동시에 들리는 킬몽거의 말.

“But it’s from Wakanda.”

제국주의 열강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유물들을 가져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들의 식민지에서 훔쳐오거나, 무력으로 빼앗아 온 것이다. 아름답고 안전한 공간에 모셔져 있는 그 유물들의 반환, 복위 Restitution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How do you think your ancestors got these? Do you think they paid a fair price? Or did they take it… like they took everything else?”

 

슬럼가에서 나고 자란 에릭 킬몽거는 사실 와칸다인이다.

와칸다는 세계 최빈국 처럼 보이지만 비브라늄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가진 나라다.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눈부신 과학 기술과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했으며, 와칸다 왕족에게는 블랙팬서라는 수호신의 초능력도 있다. 트차카는 와칸다의 왕이자 블랙팬서로서 자국민의 안녕과 세계평화를 위해 비브라늄의 존재를 숨긴다. 비브라늄이 알려지는 순간 세계 열강들이 ‘우리’ 아프리카를 박살내고 자원을 약탈해갈 것을 걱정한 듯 하다. 하지만 트차카의 동생 은조부의 ‘우리’의 개념은 국가를 넘어선다. 아프리카 땅 바깥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을 외면할 수 없던 은조부는 고향의 비브라늄을 미국으로 반출하게되고, 그 사실이 발각되어 형의 손에 죽게된다. 그 아들 은자다카는 슬럼가에 남아 고아로 자라게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에릭 킬몽거.

은자다카의 아빠 은조부, 뒤는 심복 주리. 은자다카는 밖에서 농구하고 있음 – <블랙팬서>
킬몽거는 명문대학과 특수부대를 거쳐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으른으로 자라게 되고 호시탐탐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갈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물관 털이를 기회로 드디어, 와칸다로 돌아가게 된다.

슬럼가의 왕, 와칸다의 왕이 되다

영화의 시간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의 이후이다. 지모 Zemo 의 유엔 테러로 티찰라가 죽고, 와칸다에서는 비어있는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와칸다는 지구 최고의 과학 강국이지만 정치는 발전하지 못했는지 부자 세습으로 왕위와 블랙팬서가 정해진다. 나름 반대 의견도 받는데 방식은 역시 원시적이다. 싸워서 이기면 왕이다. 그 와중에 또 공정하다. 적통자에게 자동으로 이어지는 블랙팬서의 초능력을 제거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주먹다짐을 하게된다.

티찰라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미는 부족장 음바쿠 M’baku 와 정정당당히 겨루고 승리한 뒤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음바쿠는 패배를 인정하고 티찰라를 왕으로 추대하고, 티찰라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자 블랙팬서가 된다. 딱 그 상황에서 또다른 적통자 은자다카가 나타난다.

이미 왕위 계승도 다 끝났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가는 중이지만, 트찰라는 정의로운 인간이니까 굴러들어온 돌 은자다카의 도전장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깔끔하게 진다. 그냥 진게 아니라 폭포 아래로 떨어져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애초에 곱게 자란 왕자님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구르던 슬럼가 출신 특수부대원의 대결이 말이 안되잖아. 은자다카가 이기는 것이 당연.

 

스크린샷 2018-04-17 오후 1.23.10.png
은자다카가 왕위를 계승하려는 욕망에 너무나 공감이 되고 (잘생겨서?!) 또한 그 당위성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이라 스토리 전개가 기대되었다. 은자다카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비브라늄으로 무장한 군대를 일으켜 백인으로 대표되는 서구 열강이 독점하고 있는 각종 자본들을 박살내러 간다. 하지만 디즈니 세계관에서는 백인으로 대표되는 서구 열강이 바로 정의 아닌가. 은자다카는 그 순간 빌런이 되어 와칸다 국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전통의상(?)을 입고나온 은자다카

 

은자다카의 ‘우리’ 개념은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매우 고립되어있는 국가 대한민국에서 자란 나는 아시안이라는 인종적 개념보다는 한민족 혹은 우리 국민 등 민족적, 국가적 개념이 더 가깝기 때문에 전 세계의 흑인들을 ‘우리’로 묶는 것이 조금 생소했다. 은자다카가 인종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면서 ‘미국인’ (혹은 와칸다 국민) 보다는 ‘흑인’이 훨씬 끈끈한 개념일 것이라는 것을 추측해볼 뿐. 그 억압의 정서가 아프리카 피식민 국가들에게도 유효하여 전 세계 흑인들이 결속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은자다카의 ‘우리’는 탈국가, 탈혈통, 탈민족적이지만 인종주의적이다. 그러면 ‘흑인’은 하나의 인종으로 퉁(?) 칠수 있는걸까? 티찰라 엄마는 아시안 느낌이던걸? 은자다카의 혁명적인 방법론에는 동의하지만 그 ‘우리’의 개념에는 물음표를 붙여본다. 내가 은자다카와 결혼하면 나도 ‘우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사심노출)

와칸다의 비브라늄 창고를 털어 세계로 맞짱뜨러 나가는 은자다카를 보며 트찰라의 엄마와 천재 과학자 동생, 구연인이자 활동가(?) 나키아는 와칸다의 미래를 걱정한다. 단순히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돌을 빼낸 것에 대한 분노로는 조금 모양새가 안나는 설명이다. 와칸다만이 독점할 수 있는 비브라늄 반출에 대한 걱정일까? 은자다카에 의해 박살날 서구 열강에 대한 걱정?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은자다카가 왕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연히 떨어진 천혜의 자원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혁명가에게 전복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 애국보수 여인들은 도움의 손길을 뻗으러 음바쿠를 찾아간다. 죽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인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여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경험했던것 처럼, 애국보수 여인들도 독생자의 부활을 경험한다. 트찰라가 음바쿠를 살려주는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에서 지모에게 베풀었던 자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자비가 돌아와 자신의 목숨을 구한다.

 

블랙팬서는 흑인 아이들에게 “너희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라는 강력한 메세지와 함께 나타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히어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백인들을 위해 싸우고 흑인들의 혁명가를 무찌른다. 개인적으로 더 아쉬운건 여자 아이들에게 “너희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영화는 마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 마블 영화 치고는 여성 캐릭터들이 할 일이 많긴 하다. 미국에서도 부산에서도 와칸다에서도 계속 섹시한 옷을 입어야 하긴 하지만.

은자다카의 죽은 앞에서 트찰라는 이복 형아의 깊은 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지구인들에게 와칸다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형아의 고향인 슬럼가를 비롯한 흑인들을 위해 와칸다의 부와 지식을 나누겠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트찰라는 우주선을 타고 삼촌과 형아가 살았던 건물에 찾아간다. 그 앞 농구코드에서 놀던 꼬마들은 우주선을 보고 부품을 빼다 팔자고 회의한다. 그 아이들의 생활을 잘 보여주는 대사였다. 도둑질이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생계인.

잘생긴 비운의 혁명가는 그렇게 사라졌지만 수많은 짤방을… 아니 중요한 메세지를 남겼다. 마블 시리즈는 더이상 평범한 선과악의 구도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흑인 히어로, 어린 여성 과학자, 이유있는 악당들이 기존 히어로 시리즈들에 균열을 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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